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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이고자 한 끊임없는 노력



  독서의 귀중함이나 효용에 관해서는 말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는 감이 든다. 동서양의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긴 인물들의 한결 같이 그것을 강조하고 또 그것을 실천한 사실로 이야기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들이 그것을 강조할 때에는 옛 성현들이나 '지식인'의 경우와 한 가지 점에서 다르다. 즉 지난날의 독서 숭상은 지배자와 소수의 관료적 지식인(엘리트)을 위한 것이었다. 독서와 과거(科擧)의 관계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동서양 모든 사회에 공통된 것이다. 즉 출세를 목적으로 한 소수의 선택된 자의 행위였다.

  지금의 독서는 다르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유인(自由人)을 목표로 하는 모두의 노력이다.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염원에서 출발하는 누구나의 제한 없는 자기창조의 노력이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사람은 독서를 통해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 할 수 있다.

  '자유인'이란 무엇인가? 무지와 몽매와 미신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다. 고대 인간이 물질적 법칙과 현상의 원리를 깨우치는 긴 과정을 통해서 오늘의 물질적 자유인이 된 과정이다. 무지로 말미암은 미신에서의 자유가 곧 독서의 기능이었다. 독서는 곧 '과학'이었고 '지적(知的) 자유인'의 식량이었다.

  대중의 무지와 영생의 희구를 지배 수단으로 삼은 종교적 미신·오류·탄압·교활·허식·권위······ 등과 싸우면서 '인간'의 개인적,도덕적,정신적,사상적 자유의 지평을 넓혀온 것도 독서(즉, 진리)를 통해서였다. 소크라테스나 코페르니쿠스 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은 스스로 자유인이었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동시대의 동포들과 후세의 인류를 '자유인'으로 한 단계 높여준 '독서인'이었다. 독서는 진리요 해방인 것이다.

  다음으로 독서는 사회(사람들의 조직적 생존방식)적 억압으로 부터 개인을 자유롭게 했다. 스스로 자유인이고자 했던 위대한 정신과 두뇌인 장 자크 루소의 글은 프랑스혁명의 큰 도화선이 되었다. 그의 저서는 역사적 사회조직의 무게에 억눌린 중세 대중에게도 인간적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사상, 정치,도덕,윤리,사회적 '자유인'을 창출했다. 그 후 마르크스의 사상과 저서들이 계급적 자유의 문을 열어준다.

  물질현상에 대한 미신으로부터의 지적(과학적) 자유인, 종교·윤리적 억압으로부터의 인간적 자유인, 정치·사회·경제적 예속으로부터의 사회적 자유인 등은 모두 독서를 통한 인간능력의 해방의 결과였다. 그러나 자유인의 자격을 다 채우기 위해서는 그것들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하다. '지성'적 자유인을 위한 독서가 더해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인간의 '행복'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삶의 '내용'에 관해서다. 삶의 '질'(質)이다.

  우리는 많은 독서와 경험(교육과 탐구)을 통해서 지구가 모나지 않고 둥글다는 진리를 확인했다. 우리는 부단한 진화 과정상의 현재의 존재이며, 인간보다 더 높거나 더 귀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자아)와 어떤 '다른 것'(타자)들과의 관계에서의 자유를 위한 조건들이다. 그것은 '자유'의 외부적 그릇(器)이라 할 수 있다.


그 그릇은 채워져야 하며 채워지기를 요구한다.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따라서 그 그릇 전체의 성격과 가치가 결정된다. 무엇인가? 통틀어 '문화'라는 큰 개념으로 표현되는 인간적 창조활동이다. 음악·시·소설·무용·사상·철학·회화·건축·음식·오락·스포츠······ 그 밖의 모든 형태와 형식의 인간적 창조활동이다.

  그 많은 창조활동의 전부는 고사하고 어느 한 분야에 통달하려 해도 우리는 높은 수준과 많은 분량의 독서와 실천을 해야 한다. 여기서 '전문'과 '교양'이 갈라진다.

  자유는 곧 지성이다. 원숙한 지성이 자유인을 만든다. 이상적인 지성적 삶(인생), 즉 자유인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에서 특정 전문적 기능을 획득 발휘하면서 동시에 높은 수준의 인류 보편 공통적 문화(즉 교양) 창조에 참여하거나 문화적 결과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인생이고자 하는 것이 현대의 독서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손쉽게 생각나는 대표적 지성인, 즉 현대적 '자유인'을 찾는 다면 아인슈타인, 슈바이처, 피카소, 사하로프 같은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외적 삶에 속한다. 너무도 뛰어난 지성인이다. 바라건대 다만 그들과 같은 존재를 표본으로 삼아서 꾸준히 노력하는 독서 습관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좁은 전공 또는 전문분야에서는 뛰어나되 인류공통의 문화적 관심을 멀리하는 삶은 자유인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자유'는 동포나 인류의 문제 또는 관심사에서 자신을 단절하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동포, 국민, 민족, 나아가서는 인류·····

다시말히 통틀어 '인간'의 현실에 깊고 넓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그 행복을 위해서 늘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이다. 그 바탕은 뭐니뭐니 해도 잘 선정된 독서를 통해서 구축될 수 있다. '선정된' 독서란 잡독이나 남독이 아니라는 뜻이다.

  높은 수준의 교양인, 웬만한 지성적 사고력과 인식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평생 동안 독서를 게을리할 수 없다. 우리 범인(凡人)들에게는 좁은 전문지식을 위한 독서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예술·문학·종교·사상·철학·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웬만큼 높은 '교양적' 지식을 고루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평있는 선정된 도서를 체계적으로 읽는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고등학교까지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간 젊은이들에게는 단순한 기능적인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권고한다. 동서양의 진정한 지성인들의 삶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20대에 높은 교양적 축적을 다한 사실을 알게 된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단단한 지적 몽매가 한 구석씩 깨어지는 순간의 감격은 거의 종교적 희열과 같다.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유인'이 되기 위해 애써 독서하는 삶을 살자.

 


리영희-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ch 8, 자유인이고자 한 끊임없는 노력,1992.3)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안될거 같다.

나태한 나의 글읽기에 대한 앞선 지성인의 충고이자 내 안에서 채찍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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